
자동차 경주의 철인3종경기
World Rally
Championship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은 ‘자동차 경주의 철인3종경기’로 통한다. 빙판길, 눈길, 자갈길, 진흙 밭, 물웅덩이, 좁은 산길과 가파른 계곡 등 최악의 주행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스피드를 겨룬다. 1973년 창설된 지옥의 레이스는 유럽, 남미, 오세아니아 등 해마다 전 세계 13~14개 코스를 달린다. 영하 25도로 떨어지는 혹한의 눈보라, 코앞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퍼붓는 폭우, 아스팔트 도로가 녹아내릴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레이싱은 멈추지 않는다.
WRC의 다크호스 현대차
흙먼지에 시야가 가려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보조 드라이버의 페이스노트와 서치라이트에만 의지한 채 질주는 계속된다. 자동차 경주에 최적화된 매끈한 서킷 위를 달리는 포뮬러원(F1)과 달리 온갖 험로를 달리며 승부를 겨루는 ‘실전 격투기’다.
WRC에 참여하는 자동차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저도 참가를 주저한다. 차량 성능과 기술력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출전 회사의 자존심 경쟁 역시 레이싱 선수 못지않게 뜨겁다.
1973년 출범 후 최근 20여 년간 푸조·포드·폴크스바겐·시트로앵·스바루·미쓰비시·도요타 등 유럽 및 일본 자동차 메이커가 주류였던 WRC의 지형에 균열이 생겼다. 현대차 모터스포츠팀은 이미 단일 레이스에서는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제는 시즌 종합 챔피언까지 넘보는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WORLD RALLY INFORMATION
당신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WRC 2016
현대로 뭉친 26개국
200명 다국적군
"2000년대 초반 WRC 출전 땐 대회 후 데이터도 받지 못했다. 이번엔 다르다. 유럽 현지팀을 빌려 출전했던 과거와 달리 현대가 직접 팀을 만들었다." (현대차 모터스포츠팀 장지하 과장)
현대차의 WRC 도전은 처음이 아니다. 2000년부터 WRC에 출전했지만 중하위권을 맴돌다 2003년 시즌 중반 WRC에서 철수했다. 10년 가까이 절치부심한 현대는 2012년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현대모터스법인 설립
팀을 제대로 꾸리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모터스포츠를 전담하는 현대모터스포츠법인(HMSG)을 2012년 1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시 인근 알체나우에 설립했다. 현대차 유럽법인, 유럽기술연구소, 유럽디자인센터, 독일 뉘르부르크링 테스트센터가 인접한 곳이다.
51회나 우승을 경험한 프랑스의 전설적 감독 미셸 난단(55)을 영입했다. 모터스포츠 특히 WRC에서 축구 감독인 히딩크만큼 명망이 높다.
HMSG는 드라이버, 엔지니어, 미캐닉도 세계 톱클래스로 구성된 다국적군이다. 26개국 출신 2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현대의 엔진…
WRC 정상을 밟다
2012년 12월 설립된 HMSG는 2013년 5월21일 첫 테스트 주행을 했다. 복귀 첫해인 2014년의 목표는 간단했다. 완주였다. 경험을 쌓으며 한발 한발 전진하겠다는 포부였다. 8월 독일에서 열린 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첫 테스트 주행 후 불과 460일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2015년은 내실을 다지는 해였다.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시즌 중반 새로운 엔진을 장착한 신형 i20 개발을 마쳤다. 엔진, 브레이크, 기어, 서스펜션 등 모두 현대의 기술로 만든 랠리카다.
장지하 현대차 모터스포츠팀 과장은 “신형 i20로 지난 시즌 중반부터 대회에 출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부 논의 끝에 더 완벽하게 준비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무려 8000km나 테스트하면서 2016년 시즌을 준비했다. 난단 감독도 ‘이제 자동차 때문에 우승하지 못했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랠리카의 성능에 만족했다”고 말했다.
i20는 4라운드 아르헨티나 랠리, 6라운드 이탈리아 랠리에서 우승했다. HMSG는 1위 폴크스바겐을 맹렬히 추격하며 시즌 팀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다.
1967년 설립한 현대차는 80년대까지 미쓰비시 엔진을 사용했다. 84년부터 엔진 개발에 돌입해 91년 알파엔진을 선보였다. 현대의 엔진은 세계 최고의 오프로드 자동차 경주인 WRC에서도 경쟁력을 뽐내고 있다. 지금은 현대가 독자 개발한 엔진을 모든 현대차에 탑재한다. 오히려 다른 브랜드에 엔진을 공급하고 있다.
뉘르부르크링에서 테스트…
남양에서 완성
현대를 상징하는 알파벳을 고르라고 한다면 무엇일까. 현대의 이니셜은 H지만, 지금은 고성능차 N에 거는 기대가 크다. N은 남양에서 태어나 뉘르부르크링에서 담금질(Born in Namyang, honed at Nurburgring)해 만든다는 의미다.
뉘르부르크링은 HMSG 인근에 있는 세계적인 서킷이다. 무려 1만 명이 연구실의 불을 밝히는 경기도 화성의 남양연구소는 현대차 R&D의 총본산이다. HMSG는 WRC 출전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뉘르부르크링에서 앞으로 출시될 양산 차량을 테스트한다. 여기서 얻은 결과는 남양연구소로 전달된다. WRC 외에도 현대는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레이스에도 출전한다. 남양에는 전문 부서가 WRC를 지원을 상시 준비하고 있고, WRC 현장에는 남양연구소에서 파견된 엔지니어가 생생한 경험을 쌓는다. WRC와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 등 각종 대회에서 얻은 노하우는 N카를 포함한 양산차 성능 향상으로 이어진다.
250마력 N카… 외관은 i30
현대의 고성능 N카의 첫 번째 모델은 배기량 2000cc, 4기통 터보 엔진을 장착해 최소 250마력 이상의 힘을 낸다.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며 외관은 2016년 9월 선보인 3세대 i30를 베이스로 한다. N카는 BMW M, 메르세데스 벤츠 ‘AMG’, 아우디 ‘R·RS’ 같은 고성능차 브랜드다. BMW M시리즈 총괄 책임자였던 알버트 비어만이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돼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다.
30년간 고성능차 개발을 한 그가 밝히는 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운전하는 재미(Fun to drive)를 느낄 수 있는 차다. 그는 “고성능차는 제품의 가치와 내구성, 디자인, 주행 성능이 어우러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운전하는 재미다. 이는 운전자에게 엔진의 출력만큼이나 중요하다. 코너를 돌 때의 느낌, 가속과 제동 때 즉각적으로 반응해 운전의 재미가 느껴져야 한다. N프로젝트는 현대차에 감성을 불어넣을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