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연결로 만드는 꿈과 희망

다른 누군가의 꿈과 희망을 위해 묵묵히 조연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세상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연 못지않게 더욱 빛나는 사람들입니다.
역경 속에서도 그들은 어제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을 돕거나 소중한 ‘연결의 고리’를 자처합니다.
중앙일보와 SK텔레콤은 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연결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이들이 진짜 세상의 주인공일지도 모릅니다.

시각장애인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양재림 선수 가이드러너 고운소리 선수

시각장애인 3급의 양재림(27) 선수는 국내 유일한 시각장애인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 선수다.
미숙아 망막증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은 그는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미술학도다.
시각장애인으로서 균형감각을 잘 유지하기 위해 스키를 타기 시작한 양 선수.
하지만 스키장이 대부분 해발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안압에 영향을 주고, 흰 눈빛이 반사되는 것도 치명적이다.
양 선수는 2014년 소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여자 시각스키 대회전 부문에서 1, 2차 시기 합계 3분5초90으로 아쉽게 4위를 기록했으나 이 성적은 알파인 스키 대회전 경기에 출전한 우리나라 선수 중 최고 기록이기도 했다.

양 선수의 옆에는 늘 가이드러너 고운소리 선수가 있다. 국가대표 상비군, 동계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 선수였던 고 선수. 대학생이던 그는 시각장애인 선수 가이드 권유를 받으면서 가이드러너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소속으로 지난해 8월부터 양 선수와 함께 호흡을 맞춰오고 있다.

하나, 둘! 업, 다운! 턱! 스톱!

앞을 치고 나가는 고운소리 선수, 그리고 바로 뒤이어 활강하는 양재림 선수.
두 사람은 블루투스 기기로 소통하며 시속 100㎞에 가까운 속도로 기문 30여 개를 지나 연이어 내려온다.
경기 중에는 둘만의 소통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미세한 잡음도 환호도 허락되지 않는다.

혼자 타면 고독한 싸움이지만, 함께 타면 아름다운 도전 두 사람 간격이 많이 벌어지는 것도 실격 요인. 끊임없이 가이드러너가 뒤를 돌아보며 상황을 확인한다.
국제경기에서는 기문의 위치가 모두 조금씩 달라 선수들은 경기 1시간 전 미리 코스를 보며 경기 루트를 외워야 한다.

두 사람은 시속 100㎞에 가까운 속도로 보이지 않는 기문을 내려온다. 당연히 동일한 기문을 두고도 턴하는 시간이 다르다.
그만큼 호흡이 중요다. 하지만 동일 종목의 일반인 스키 선수와의 기록 차이가 20~30%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지금은 1년에 300일
이상을 함께하며 호흡을 맞추고 있다.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도록 가까워져야 한다”는 게
두 사람의 생각이다.

“우리 둘만의 신뢰관계나
둘의 존재 자체가 ‘연결’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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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타면 '고독한 싸움'이지만 둘이 함께 타면 덜 긴장돼요.
고운소리 가이드러너 선수

혼자 타면 ‘고독한 싸움’이었는데, 둘이 타면 오히려 덜 긴장돼요.
‘혼자 타도 힘든데 둘이면 훨씬 더 힘들 거다’라고 걱정하시는 분이 많았지요.
제가 책임감을 많이 느껴야 하지만 즐거워요.
언니는 의지력과 정신력이 정말 강해요. 경기를 할 때면 오히려 제가 압도당해요.

신뢰가 없으면
위험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양재림 선수

“선수와 가이드러너 간에 신뢰가 없으면 선수는 모든 위험에 노출돼요.
선수가 넘어졌는데 가이드가 모르면 큰일나죠.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경기에 임하는 마음 자체가 깨져 버려요.
‘경기를 잘 해야 하는 데’ 보다 ‘별일 없어야 될 텐데’만 생각하다 보니까 집중을 할 수 없죠.”

오른쪽 눈으로만 보이는 세상, 다른 절반의 세상을 같이 보다

스키 선수가 됐을 당시 양 선수의 목표는 ‘소치 출전’이었다. 메달권 진입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실제 경기에서 아쉽게 4위를 한 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4년 후를 기약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다.
양 선수의 아버지는 “시력이 계속 떨어져 ‘절대 불가능하다’며 말렸지만 본인의 의지를 꺾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목표는 이제 2018년

그러나 시각장애인 스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다.
양 선수는 해발 고도가 높은 스키장에서 자주 연습하면서 시력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의 출전은 불가능하다며 가족은 말렸지만 선수 본인의 의지를 꺾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목표와 꿈이 있다.

양재림 선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고운소리 선수 “저도 언니에게 계속 도움을 주고 싶고, 많은 시각 장애인이 이런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눈이 되어, 또 한번 눈 위를 달립니다

이름 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땀 흘리다 불펜 포수 이석모의 특별한 하루

야구 선수들과 똑같이 유니폼을 입고, 같은 장비를 차고, 함께 굵은 땀방울을 흘리지만 늘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SK와이번스 불펜 포수 이석모(26).
구단 소속의 유명 투수들이 등판하기 전 반드시 찾는 사람.
선수가 아닌 훈련 보조원 신분인 그는 때론 타자들에게 볼을 던져주기도 하고, 선수들의 전력을 분석하기도 한다.

불펜 포수는 이 모든 일을 하루 종일 묵묵히 해내고 있다.

석모야 고마워

숨은 ‘명품 조연’ 이석모는 9월 6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구단 입단 8년 만에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의 ‘1000경기 출장’을 축하하는 깜짝 이벤트를 구단과 선수, 그리고 SK텔레콤이 함께 준비한 것이다.
경기 전 덕아웃에 앉아 있던 그의 눈앞에 들어온 전광판, 이석모 불펜 포수만을 위한 특별 영상과 선수들의 축하 메시지…

마침내 그가 1만명 관중 앞에 주인공으로 선 날,
그라운드에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오전 9시에 출근해 모든 훈련장비를
세팅하면서 그의 일과는 시작된다.
시즌 동안에는 하루에 평균 300개의 공을 받는다는 불펜 포수.
피칭·캐치볼도 해주고 배팅 볼도 던져야 한다.
전지훈련 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훈련과 관련한 모든 일을 다 도맡아 해야 한다.

“투수가 경기에서 잘 던지면
저까지도 기분이 좋아요.
제가 도움을 줬고,
그 때문에 선수도 구단도 잘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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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 포수도 경기장에 올라가고 싶고, 앞에 나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초반에는 ‘아 나도 야구선수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어요. 지금 내 자리에서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경기장에 올라가고 싶고, 앞에 나가고 싶고… 저는 그냥 선수들이 많이 찾는 불펜포수로 남고 싶어요. 저도 꿈 꿔왔던 게 야구선수고, 지금도 야구선수의 공을 받는 게 좋거든요. 필요한 거 없어요. 지금처럼 갔으면 좋겠어요.

부상을 당해도
내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연습을 하다 보면 사인 미스가 많이 나요. (어깨에 시커먼 멍을 보여주며) 이게 사인 미스 때문에 맞아서 핏줄이 터진 거예요. 이것도 제가 일요일에 맞은 건데 원래는 손도 못 들었어요. ‘내일도 받아야 하는데….’ 전 이게 당장 걱정이죠. 그렇다고 아프다고 티 내면 안 돼요. 투수들이 중간에 포수 바뀌는 걸 싫어하거든요. 연습하고 던지는데 리듬이 깨지니까. 전 아파도 내일을 준비하는 거죠.

연결의 힘 SK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