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선 NCSOFT의 게임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것도 오케스트라 연주로. 해외 오케스트라가 게임 음악을 연주한 경우는 많지만, 국내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처음이었다. 특히, 이날 열린 <게임 속 오케스트라>는 게임 회사의 협찬이나 요청이 아닌, 오케스트라(코리안심포니)가 직접 기획한 연주회였다. 청중은 게임 배경음악(BGM)이나 타이틀 곡을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는 동시에 해당 게임의 영상도 함께 볼 수 있었다. <테트리스> 같은 추억의 고전 게임 음악에서부터, 한국 대표의 온라인게임들을 제작한 NCSOFT의 <리니지>, <아이온>, <블레이드&소울> 등 주요 게임 음악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로 재현됐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시도를 이끈 이병욱 지휘자를 만났다.
A. 사실 난 게임을 즐기진 않는 편이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주변에 게임을 하는 어른이 참 많다는 점, 그리고 게임 스토리가 상당히 탄탄하다는 점이었다. 공연에 온 사람들 중 3분의 2는 게임을 잘 알고 음악만 들어도 장면이 머리 속에 그대로 그려지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게임 유저인 관객들에게 게임의 긴장감과 템포를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 이외 관객들은 게임 속 음악을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는다는 데 호기심이 컸다. 오케스트라 음악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걸 알릴 수 있도록 구성했다.
A. 오히려 공통점이 많더라. 게임도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고, 캐릭터나 장면의 전환에 각기 다른 음악을 사용해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가령 게임에서 왕이나 중요한 캐릭터가 등장하면 웅장한 음악이 나오는데 이건 클래식 음악이 풀어가는 형식과 비슷하다. 게다가 요즘엔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게임 음악의 몰입도가 더 높아진 것 같다. 지휘하고 연주하는 과정은 더 편했다. 클래식 음악은 주제와 그림 하나 보고 이해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게임은 장면마다 충분한 설명과 스토리가 있으니까.
차이점이라면 클래식 공연에선 매번 템포가 다르다. 관객이나 연주자 그리고 그날 공연 분위기에 따라 똑같을 수가 없다. 하지만 <게임 속 오케스트라> 공연은 영상과 음악이 초 단위까지 정확히 일치해야 했다. 클래식 음악에 비해 게임 음악의 멜로디가 아무래도 기억하기 쉽고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점, 반복이 잦다는 점도 클래식과 달랐다.
A. 영화나 드라마 영향 때문인지 사람들은 지휘자가 상당히 권위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거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다. 요즘은 지휘자 연령도 낮아졌고 소통 방식도 변했다. 지휘자는 연주자와 관객을 이어주는 가교다. 음악엔 정답이 없다. 때문에 연주곡에 대한 지휘자의 생각을 단원들에게 이야기하며 오케스트라를 이끈다. 지금까지 내가 느낀 건 가장 효율적인 연습은 원활한 소통이라는 것이다. 소통이 안되면 연습 효율도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A. 무대 뒤에서 공연의 시작을 기다리는 순간이다. 30초 전쯤 되면 정적이 흐른다. 그 정적을 깨고 우리가 어떤 소리를 만들어낼지 궁금하고 짜릿하다. 공연 소리는 매 순간 새롭게 만들어지니까 같을 수가 없다. 그리고 무대로 몇 발자국 걸으며 관객들의 얼굴, 그리고 박수 소리를 들으면 그날 공연이 어떻게 진행될지 느낌이 온다.
A. 진작 했어야 할 일이었다. 우선 관객들의 반응이 기존 공연보다 활기찼다. 볼거리가 추가됐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고. 기존 클래식 공연의 경우엔 깊이 몰입하지 않으면 30분 정도 지나 지겨워 하는 관객들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게임 영상과 함께 음악을 듣는 신선한 형식 덕분에 공연을 더 즐겁게 즐겼다는 반응이 많았다. 요즘은 게임 산업이 발전하면서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단원들 그리고 작곡가가 게임 음악에 많이 참여한다고 알고 있다. 요즘 모바일 게임 유저가 상당히 많더라. 스마트폰 사운드 기술도 많이 발전한 만큼 게임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더 높아질 것 같다. 기존의 작곡가뿐 아니라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기회의 장이다. 난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게임 음악이 하나의 음악 장르로 확고하게 자리잡을 거라 예상한다.
A. 예술단이다. 단순히 오락성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콘텐츠의 예술성을 생각하는 기업이란 인상을 받았다. 스토리의 완결성을 위해 사운드실도 별도로 갖춘 걸로 아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집요해야 가능한 일이다.
A. 기본적으로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는 걸 좋아한다. 발레 음악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장면에 맞춰 공연을 한 적도 있다. 현재는 무성영화 프랑켄슈타인을 상영하고 장면에 맞는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