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1

FUN한 세상

오케스트라와
게임이 만나다

예술과 기술 사이, 즐거움이 커지는 곳

게임은 종합예술이다. 스토리ㆍ영상ㆍ음악이라는 여러 장르가 게임에서 어우러진다. 그 예술을 구현하는 것은 캐릭터 디자인ㆍ프로그램 개발ㆍ서버 구축 등 탄탄한 기술이다. 예술과 기술이 만난 융합 콘텐츠인 게임은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인 동시에 4차 산업혁명에 최적화된 산업군으로 꼽힌다. 이는 숫자에서도 나타난다. 한국 게임의 수출액은 2015년 30억 달러를 넘어섰다. K팝의 11배, 영화의 132배나 된다. 융합의 DNA가 강한 게임은 최근 여러 예술 장르와 콜라보래이션(협업)에도 적극적이다. 게임 아트 작품 전시회뿐만 아니라 뮤지컬, 영화, 대중음악, 피규어(인형) 제작 등 다양한 분야와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NCSOFT는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대규모 다중접속자 온라인 역할수행 게임)인
<블레이드&소울>의 스토리와 캐릭터를 테마로 한 2015년 뮤지컬 <묵화마녀진서연>(감독 남경주)을 선보이기도 했다.
게임을 잘 모르는 대중도 문화예술 콘텐츠로서 게임의 스토리를 즐길 수 있도록 게임을 재해석한 것이다. 또 게임 음악을 분야에서도 국내외 뮤지션들과 협업해 퀄리티를 높였다. 즐거움의 범위를 게임 밖의 영역으로 확장한 것.

해외에서 한국영화보다 더 환영받는 한국게임

자료:한국콘텐츠진흥원(2016년 기준)

interview

클래식, 게임음악에 눈을 돌리다

지난 5월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선 NCSOFT의 게임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것도 오케스트라 연주로. 해외 오케스트라가 게임 음악을 연주한 경우는 많지만, 국내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처음이었다. 특히, 이날 열린 <게임 속 오케스트라>는 게임 회사의 협찬이나 요청이 아닌, 오케스트라(코리안심포니)가 직접 기획한 연주회였다. 청중은 게임 배경음악(BGM)이나 타이틀 곡을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는 동시에 해당 게임의 영상도 함께 볼 수 있었다. <테트리스> 같은 추억의 고전 게임 음악에서부터, 한국 대표의 온라인게임들을 제작한 NCSOFT의 <리니지>, <아이온>, <블레이드&소울> 등 주요 게임 음악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로 재현됐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시도를 이끈 이병욱 지휘자를 만났다.


A. 사실 난 게임을 즐기진 않는 편이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주변에 게임을 하는 어른이 참 많다는 점, 그리고 게임 스토리가 상당히 탄탄하다는 점이었다. 공연에 온 사람들 중 3분의 2는 게임을 잘 알고 음악만 들어도 장면이 머리 속에 그대로 그려지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게임 유저인 관객들에게 게임의 긴장감과 템포를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 이외 관객들은 게임 속 음악을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는다는 데 호기심이 컸다. 오케스트라 음악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걸 알릴 수 있도록 구성했다.


A. 오히려 공통점이 많더라. 게임도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고, 캐릭터나 장면의 전환에 각기 다른 음악을 사용해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가령 게임에서 왕이나 중요한 캐릭터가 등장하면 웅장한 음악이 나오는데 이건 클래식 음악이 풀어가는 형식과 비슷하다. 게다가 요즘엔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게임 음악의 몰입도가 더 높아진 것 같다. 지휘하고 연주하는 과정은 더 편했다. 클래식 음악은 주제와 그림 하나 보고 이해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게임은 장면마다 충분한 설명과 스토리가 있으니까. 차이점이라면 클래식 공연에선 매번 템포가 다르다. 관객이나 연주자 그리고 그날 공연 분위기에 따라 똑같을 수가 없다. 하지만 <게임 속 오케스트라> 공연은 영상과 음악이 초 단위까지 정확히 일치해야 했다. 클래식 음악에 비해 게임 음악의 멜로디가 아무래도 기억하기 쉽고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점, 반복이 잦다는 점도 클래식과 달랐다.


A. 영화나 드라마 영향 때문인지 사람들은 지휘자가 상당히 권위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거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다. 요즘은 지휘자 연령도 낮아졌고 소통 방식도 변했다. 지휘자는 연주자와 관객을 이어주는 가교다. 음악엔 정답이 없다. 때문에 연주곡에 대한 지휘자의 생각을 단원들에게 이야기하며 오케스트라를 이끈다. 지금까지 내가 느낀 건 가장 효율적인 연습은 원활한 소통이라는 것이다. 소통이 안되면 연습 효율도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A. 무대 뒤에서 공연의 시작을 기다리는 순간이다. 30초 전쯤 되면 정적이 흐른다. 그 정적을 깨고 우리가 어떤 소리를 만들어낼지 궁금하고 짜릿하다. 공연 소리는 매 순간 새롭게 만들어지니까 같을 수가 없다. 그리고 무대로 몇 발자국 걸으며 관객들의 얼굴, 그리고 박수 소리를 들으면 그날 공연이 어떻게 진행될지 느낌이 온다.


A. 진작 했어야 할 일이었다. 우선 관객들의 반응이 기존 공연보다 활기찼다. 볼거리가 추가됐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고. 기존 클래식 공연의 경우엔 깊이 몰입하지 않으면 30분 정도 지나 지겨워 하는 관객들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게임 영상과 함께 음악을 듣는 신선한 형식 덕분에 공연을 더 즐겁게 즐겼다는 반응이 많았다. 요즘은 게임 산업이 발전하면서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단원들 그리고 작곡가가 게임 음악에 많이 참여한다고 알고 있다. 요즘 모바일 게임 유저가 상당히 많더라. 스마트폰 사운드 기술도 많이 발전한 만큼 게임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더 높아질 것 같다. 기존의 작곡가뿐 아니라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기회의 장이다. 난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게임 음악이 하나의 음악 장르로 확고하게 자리잡을 거라 예상한다.


A. 예술단이다. 단순히 오락성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콘텐츠의 예술성을 생각하는 기업이란 인상을 받았다. 스토리의 완결성을 위해 사운드실도 별도로 갖춘 걸로 아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집요해야 가능한 일이다.


A. 기본적으로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는 걸 좋아한다. 발레 음악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장면에 맞춰 공연을 한 적도 있다. 현재는 무성영화 프랑켄슈타인을 상영하고 장면에 맞는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interview

윤상이 게임음악을 만났을 때

음악감독 윤상은 2016년 N-POP이란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 NCSOFT의 기업 영문명 첫 글자 ‘N’과 K-POP의 POP를 결합해 만든 말이다. N-POP는 NCSOFT의 기존 게임음악을 윤상 감독이 SM엔터테인먼트 소속 K-POP 아이돌 가수 ‘EXO-CBX(엑소 첸백시)’, ‘레드벨벳’ 등과 함께 재해석해 공연 무대에 올린 프로젝트. 게임과 대중음악을 결합한 새로운 시도였다. ‘모두를 위한 즐거움’을 표방하는 게임회사가 시도한 N-POP을 지휘한 윤상은 “새롭고 즐거운 일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대중음악 가수로서 성공한 이후에도, 뮤직테크놀러지를 공부하고 게임·뉴스·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를 만났다.


A. PC게임은 안 한다. PC게임을 하면 그 재미에 잠을 못 잘까 봐 겁이나 못하겠고 대신 콘솔 게임을 즐긴다. 집에 웬만한 콘솔게임기는 다 있다. 20대엔 작곡하는 시간 외엔 게임만 했다. 연애 대신 게임을 했으니까.


A. 사실 게임음악의 매력에 대해선 NCSOFT와 작업하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엑스엘게임즈’라는 회사에서 만든 게임 <아키에이지>의 음악을 만들면서부터다. <아키에이지>는 ‘대한민국 게임대상’상을 수상할 만큼 게이머와 업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작업을 계기로 게임에서 음악의 역할에 대해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NCSOFT와 함께 N-POP을 만들면서 기대를 넘어 확신이 들었다. 미국 뉴욕대(NYU) 대학원에서 뮤직테크놀러지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의 음악의 역할에 관심이 많았다. 몇 해전 다큐멘터리 음악에도 참여했고 얼마 전엔 모 방송국의 대선방송 음악도 만들었다. 게임이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듯, 음악도 다양한 분야로 그 영역과 역할을 넓혀가는 것 같아 행복하다.


A. 2010년까지만 해도 국내 게임 회사들은 외국 작곡가들과 게임음악을 만들었다. 게임을 이해하고 작곡할 사람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아니면 기존의 해외 작곡가들이 편하게 느껴졌는진 모르겠다. 그러다 NCSOFT가 자체 음악팀을 꾸렸단 이야길 듣게 됐다. 그걸 알고 ‘NC와는 작업할 기회가 없겠네’ 생각했는데 작년에 내게 기회가 온 거다. 예전과 달리 요샌 대형 기획사 소속 가수들과 작업할 일이 흔치 않다. 개인적으론 N-POP을 통해 엑소와 작업할 기회를 얻어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게임에서의 음악 비중은 더 커질 거고 그만큼 대중음악이 게임과 협업할 기회는 많아질 거다. N-POP에 참여하는 것이 가수로서 실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될 날도 올 것 같다.


A. 게임음악이 대중음악보다 좀 더 자유롭다. 대중음악의 경우 대중의 직접적인 평가를 받으니 반응에 대한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내 색깔 내 고집보다는 대중들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원피스’라는 프로듀서 팀을 꾸리게 된 것도 그런 요구에 맞출 수 있는 시스템을 위해서다. 게임음악의 경우 유저들이 자연스럽게 즐기게 하면 되니까 윤상이란 작곡가의 색깔을 지우지 않아도 된다. 물론 게임도 스토리와 캐릭터 그리고 세계관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는 등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점들이 있다.


A. 음악은 게임 기술을 보완하고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여주며 스토리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준다. 게임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더욱 분명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게임에 있어 음악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거다. 개인적으론 인디 게임 <플라워>를 하면서 게임과 음악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꽃을 타고서 날아다니며 주변을 아름답게 만드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다른 게임에 비해 음악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게임을 하면서 심리적으론 더 편안해지고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게임의 상호적인 기능을 통해 게임과 음악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A. 20주년이 넘어갈 때 위기감이 들더라.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열정이 시들었다고도 생각했다. 한자리에 오래 있었는데 이제 또 뭘 할지 두렵기도 했다. 업계의 전망도 그리 밝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기가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해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철학이 필요한 것 같다. 그 철학을 유지하면 20주년 30주년 같은 숫자가 특별히 중요하진 않은 것 같다.


A. 당연히 한 가지 일을 하다 보면 열정은 식는다. 내 경우엔 ‘재미없으면 끝’이란 생각을 자주한다. 그래서 재미난 다른 일을 찾곤 한다. 얼마 전 내가 프로듀싱한 ‘러블리즈’가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다. 최근 가장 재미난 작업이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열정도 쏟았던 것 같다. 앞서 이야기했던 대통령선거 관련 방송 음악도 마찬가지다. 주변을 환기시킬 수 있는 즐거운 일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대한 열정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우리 삶에 즐거움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A. 일마다 다르겠지만 책임감이 80%를 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일을 할지 말지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 내 색깔을 완전히 버려야 하는 일, 작업 퀄리티를 유지할 수 없는 일은 피한다. 이후엔 저절로 몰입이 된다. 업의 특성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늘 따라다닌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숨쉴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곡을 완성하고 믹스할 때 느끼는 행복이 엄청나다. 프로듀서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일거라 생각한다.

interview

경계를 넘어…
예술이 된 게임음악
<아이온>

재일한국인 2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양방언. 그는 2008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NCSOFT의 온라인 게임 <아이온>(AION)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를 제작했다. 음악 제작에만 3년이 걸렸고, 제작비는 10억원이 투입됐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주제곡을 부른 러시아 출신 여성 보컬 오리가(ORIGA), 한국 가수 요조(Yozoh), 중국 전통악기 얼후(호금) 연주자 쟈팡팡 등 국내외 음악가들이 작업에 참여했다. 당시 양방언의 <아이온> OST는 게임 음악의 역사를 다시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온>의 환상과 모험, 슬픔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관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게임 음악이 단순한 효과음이나 배경음악 수준에서 벗어나 영화 OST 못지 않은 예술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innovationLab은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양방언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일본 도쿄 출신인 양방언은 북한 국적인 제주 출신 아버지와 남한 국적인 신의주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1997년 한국으로 국적을 바꿨다. 니혼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1년간 마취과 의사로 대학병원에서 일하다가 음악가로 전향해 피아니스트, 작곡가,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A. <아이온> OST 제작 의뢰를 받기 전까지는 솔직히 NCSOFT에 대해 잘 몰랐다. <아이온>을 계기로 처음 한국 게임업계에 눈을 돌려보니, 당시 NCSOFT는 ‘리니지’로 선풍적인 변화를 일으킨 기업이더라. NCSOFT의 이런 면은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고 나 역시 적잖이 놀랐다.


A. 전혀 하지 않는다.^^;


A. 게임 문외한인 나에게 <아이온> 제작진이 음악을 맡아 달라고 했다. 그때 제작진의 한마디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 게임을 ‘작품’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음악을 맡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말 때문이었다.


A. 가상세계의 매력을 최대한 음악적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우선 오케스트라 등의 기존 악기는 물론 그 악기들의 소리와 소프트웨어 음원 간의 융합에 중점을 뒀다. 그리고 장르나 기존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 무한의 가상세계 <아이온>의 구축에 공헌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즉 음악적인 모든 가능성에 도전해본 작업이었다.


A. 글쎄… 특별히 힘들었던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처음 해보는 게임 음악이었지만 그 작업 자체가 문제된 일은 없었다. 제작진과 함께 끝까지 작업을 잘 마칠 수 있어서 오히려 즐거웠다.


A.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와 여성 보컬 오리가(ORIGA).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풍부하고도 장엄한 울림, 그리고 ORIGA의 보이스가 <아이온>의 세계관 연출에 아주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한다.


A. 게임 유저와 게임 간의 인터페이스(interface·매개)다. 게임 유저와 게임 사이에 존재하는 내 음악은 때로는 상상력으로 때로는 용기로 유저의 여러 감정을 고무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게임에서 이런 음악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A. 나의 라이브 연주활동에 충실하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려고 한다. 2018 평창올림픽의 개폐회식 음악감독으로서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고, 올해로 두 번째인 ‘제주 뮤직페스티벌’의 예술감독 소임을 잘 해내려고 한다. 특히 올해는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의 시(詩)와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구상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대형 온라인 게임 음악도 작업 중이다. 이어 연말에 있을 서울과 동경에서의 콘서트 준비도 병행할 예정이다. 아무튼 음악을 통해 흥미로운 것들에 즐겁게 도전하려고 한다.

VIDEO

NCSOFT 게임
<아이온> OST

오픈베타 영상∙2008년

게임 웹툰, 사회의 룰을 고발하다

interview

사회가
게임보다 정말
더 공정한가요

올해초 NCSOFT 블로그 ‘우주정복’에 ‘게임회사를 욕하는 웹툰이 올라오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온라인 게임이 유저들에게 ‘아이템 현질’(아이템 구입을 위한 현금 결제)을 유도하고 취업준비생들이 취업을 미끼로 내건 게임에 푹 빠져 폐인이 되는 에피소드가 이어졌다. 게임이 비판받는 지점을 콕 집어서 게임회사의 기업 블로그에 쓰다니… 화제의 웹툰 <NPC는 전기용의 꿈을 꾸는가>(이하 엔전꿈)의 작가 김보통(37)을 innovationLab이 만났다. 실명도, 얼굴도 공개 안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김보통은 4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2013년 그렇게 입사하고 싶던 회사가 죽도록 출근하기 싫어지던 순간, 퇴사했다. 6개월쯤 지난 어느 날 웹툰을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그림은 제법 잘 그렸지만 그렇다고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대학 때는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30대 김보통. 트위터에서 사람들의 프로필을 무료로 그림 그려주며 얼굴을 관찰하던 그에게 웹툰 <송곳>의 작가 최규석이 웹툰을 권했다. 투병하는 암 환자의 판타지 세계를 다룬 첫 웹툰 <아만자>는 현재 일본∙미국∙대만에서도 읽히는 글로벌 만화가 됐다. 탈영병 잡는 헌병대 D.P를 소재로 군내 인권 문제를 다룬 두 번째 웹툰 <D.P-개의 날>은 영화로 제작 중이다. 잘나가는 웹툰 작가 김보통은 도발적인 게임 웹툰 <엔전꿈>으로 무슨 얘길 하고 싶었던 걸까.


A. NCSOFT에서 처음 웹툰 연재를 제안할 때 ‘작가님 포트폴리오에 넣을 만한 수준으로 진지하게 게임 웹툰을 그려달라’고 했다. ‘NC 최고’, ‘게임 최고’ 이런 뻔한 웹툰 그리지 말라고(웃음). 그래서 고민을 6개월 넘게 했다. 그러다가 게임이 현실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니 ‘현실도 결국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다면 ‘좋은 게임이 뭔가’, ‘사람들은 왜 게임에 몰입하나’를 또 고민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왜 게임에 빠지는지, 그들이 불합리한 상황을 어떻게 빠져 나오는 지를 웹툰에 담았다.


A. 만화를 그리다 보면, 웹툰 플랫폼 편집자나 발주한 기업에서 입김을 넣을 때가 있다. 내용이 기업에 좀 비판적이거나 ‘세다’ 싶으면 “(웹툰 게재는)없던 일로 하자”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이 회사(NCSOFT)는 그런 거 없이, 내 생각을 존중해주더라. 솔직히 나도 놀랐다. 그리고 웹툰을 잘 보면, 게임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한 얘기다.


A. 음, 사람들이 게임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뭔가가 재미있어서 돈을 지불하는 건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게임회사도 (돈을 벌어야) 직원 월급도 주고 계속 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 게임을 바라보는 좋지 않은 시선 자체보다도 그걸 소재로 우리의 현실을 얘기하고 싶었다. 게임에선 내가 결제한 금액에 기대했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데 비해, 현실은 어떤가. 한 달에 100만~200만원 써도 느낄 수 없는 성취감과 만족감을 게임에선 20만~30만원으로 느낄 수 있다.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게임을 하는 거다. 기성세대가 게임에 돈 쓰는 것을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젊은 세대는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즐기는 게임을 통해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는 걸 더 원할 뿐이다. 나는 그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A. 내 결론은 ‘룰(rule∙규칙)’이다. 룰이 공정하면 좋은 게임이지만, ‘확률 조작’처럼 유저를 기만하는 룰이 숨어있는 게임이나, 다들 지키는 룰을 혼자만 어기고 각종 특권을 누리는 유저가 있다면 그건 나쁜 게임이다. 그런 면에서 ‘현실은 불합리하고 재미없는 게임 아닐까’ 생각한다.


A. 그렇다. 게임 속에 오히려 엄격하고 성실한 세상이 있다. 적어도 노력한 만큼 경험치가 오르고, 착실히 레벨업 하면 (게임 속에서) 직업도 얻을 수 있다. 비정규직도, 임금 후려치기도, 학벌 차별도 없다. 룰이 공정하지 않다면 게임이 아니라 폭력이 된다. 현실이 그렇다. 누군가는 사회의 룰을 깨고 우회하는 특혜를 누리면서 젊은이들에게는 ‘도전하고 경쟁하라’고 강요한다. 좋은 아이템(사회∙경제적 자본) 많이 가진 유저가 아이템 적은 유저에게 폭력을 막 휘둘러도 되는지, 돈 많은 백화점 고객이 아르바이트생을 무릎 꿇게 해도 되는지, 더 많은 아이템을 벌기 위해 유저 하나쯤은 죽어도 신경 쓰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냐는 질문을 웹툰에서 한 거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자꾸 현실 도피하고 게임만 한다고 비난하는 건 기성세대가 제 얼굴에 침뱉기다. 현실이라는 이 게임, 얼마나 힘든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서버 이전(사회적 지위 상승∙이동)도, 계정 삭제도 힘든데 룰까지 불공정하면 게임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게 당연하다.


A.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작가론’에 크게 공감했다. 작가는 현실을 외면하려는 사람들을 끌어다 작품 앞에 앉혀 놓고 이들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관점이다. 나는 웹툰이라는 당의정을 입혀 독자들에게 현실을 얘기하는 작가다. 알바생 주휴수당, 최저임금, 구의역 비정규직 사고…이런 현실을 암시하는 소재를 <엔전꿈>에서 짬짬이 다루는 이유다. 다음 만화의 무대로 ‘학교’를 생각 중인데, 청소년이 일주일에 한 명씩 자살하는 데도 사람들이 무덤덤하다. 사회의 근간이 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 끊는 상황을 ‘어쩔 수 없다’고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누가 이 아이들을 죽이고 있는지, 무엇이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도록 만들고 있는지 얘기하고 싶다.


A. 회사 다닐 때 일이 싫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내 소원은 전심 전력을 다해 일만 하는 것이었다. 암 환자인 아버지를 병원에 두고도 회식에 가야 하는 문화와 불합리한 노동이 싫었다. 회사 부장은 ‘5시에 일어나서 첫 차 타고 출근하면서 너무 상쾌하다’는데, 나같은 아랫사람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밤에도 8시에 일 끝나면 부장에게 또 끌려가서 술 먹고, 부장이 집에 가면 차장이 주재하는 술자리에서 또 혼나는 일상이 매일 반복됐다. 그렇게 살던 나한테 지금 일은 열심히 일한 만큼 성과가 나오고 책임도 내가 지니까 진짜 좋다. 그래서 나는 회사원처럼 날마다 나와서 일한다. 웹툰 작가로 데뷔한 이래 어시스턴트(보조작가)들은 주4일제 근무하고 휴가도 가지만, 나는 쉬진 못한다. 그래도 불만은 없다. ‘내 일’이니까.


A. 어려서부터 만화가를 꿈꾸고 달려온 사람들과 나는 재미∙즐거움의 기준이 다를 거다. 나는 엄청난 인기나 큰 돈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회사원 때보다 덜 고통스럽고 더 즐거우면 된다. 웹툰 플랫폼 편집자는 기업 블로그 연재는 그만 좀하고 내 개인 작품 연재하자고 재촉하는데, 나는 NCSOFT 사장부터 신입사원들까지 다 보는 사내 웹툰을 그리는 것도 즐겁고 재밌다. 대학 졸업 때쯤 NCSOFT 공채 시험 지원했다가 떨어져서 그런지 더 뿌듯한 마음도 든다(웃음).


A. 한때는 도서관 만드는 게 꿈이었고, 디제잉도 했고, 요리도 좋아하고….지금은 생각지도 않게 만화를 그리고 있다. 유목민 같기도 한데, 만화에만 너무 얽매이고 싶지도 않다. 회사 이름이 ‘보통디자인’인데, 만화 아닌 디자인 업무도 많이 한다. 최근에 대기업 계열 편의점의 영수증 하단에 내 만화 컷을 넣는 프로젝트를 했는데, 그것도 디자인이다. 영수증을 새롭게 디자인한 거니까. 지금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고, 언젠가 게임도 개발할 생각이다.


A.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게임 개발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도구가 많다. 지금 열심히 돈벌고 일하는 이유도 나중에 우수한 게임개발자를 채용하기 위해서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서점에 선 채로 C++ 프로그래밍 책이나 기존 공개 게임 소스를 활용한 게임만들기 책 같은 걸 보면서 게임 개발을 꿈꿨다. 당시 우리 집엔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 있는 동네 형 집에 가서 미리 외워뒀던 간단한 출력문 같은 걸 테스트해보며 좋아했다. 이후 집에 XT 컴퓨터가 생기면서 기초적인 텍스트 기반 게임을 만들곤 했다. 언젠가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그런 꿈이 있었다. 근데 그림을 포기한 이유와 비슷하게, 집에 돈이 없어서 게임도 포기했다. 책을 정말 좋아했는데, 집엔 아버지가 도서 외판원 할 때 가져다 둔 세로쓰기 고전밖에 없을 정도였다. 요즘 게임에 대해 고민하고 몰입하는 시간이 나의 미래에 거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A. 나는 NCSOFT를 게임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블처럼 원천IP(지식재산권)가 많은 회사를 꿈꾸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게임은 궁극의 엔터테인먼트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A. 학창시절부터 신입사원 때까지 항상 ‘특별하고 우수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으며 특별함에 대한 세뇌를 받았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평범한데, 왜 꼭 특별해져야만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실명 대신 ‘김보통’이란 이름을 쓰고 있다. 얼굴 비공개는 사실 별 생각은 없었는데(웃음). 독자들에게 작가의 학벌이나 전 직장, 외모 같은 정보가 만화 감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작년쯤 트위터코리아가 내 만화 속 캐릭터 모양의 탈을 만들어줘서 그 이후론 이 탈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요샌 김보통 얼굴 따위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고, 이 탈을 더 반겨주더라.

“게임 회사가 왜 야구단을 창단해?”

2011년 NCSOFT가 프로야구단 NC 다이노스를 창단한 이래 수없이 쏟아진 질문이다. “NCSOFT 사장이 야구를 좋아한다며?”, “프로야구로 게임 마케팅 하려는 거 아냐?” 등등 추측이 이어졌다. NC 다이노스는 묵묵히 새로운 야구를 보여줬다.

‘가족과 함께 즐기는 야구’, ‘즐거운 야구문화’를 위해 여름마다 창원 홈 구장을 하룻밤 캠핑장으로 오픈하고, 창원 지역 주민들에겐 홈 경기가 없는 평일에 스카이박스를 회의실·스터디룸으로 무료 개방했다. 고양시에 연고를 둔 퓨처스리그 ‘고양 다이노스’는 ‘우리동네 야구단’이라 개념을 도입해 주민들과 함께 하는 지역 야구단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공짜 경기가 당연시되던 퓨처스리그에서 3년 전 최초로 유료 입장권을 팔기 시작해 2017년 5월 유료 관중 2만명 돌파 기록을 세웠다.

야구도 벤처다 - 진격의 공룡, NCSOFT

연고지 - 경상남도 창원시

홈구장 - 창원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

창단 - 2011년 2월 8일 [KBO 9번째 구단]

모기업 - NCSOFT

구단주 - 김택진

대표이사 - 이태일

감독 - 김경문

마스코트 - 공룡 (단디 & 쎄리)

자료:NC 다이노스


NC 다이노스 최초의 기록들

KBO 첫 경기

2013년 4월 2일
경남 마산 홈개막전,
NC VS 롯데

NC 최초의
골든글러브

2014년
외야수 나성범

NC 최초의 신인왕

2013년
투수 이재학

KBO 최초의
40홈런-40도루

2015년
외야수 에릭 테임즈

첫 한국시리즈
진출

2016년
정규시즌 진입
4년만

한국프로야구(KBO) 9번째 팀 NC 다이노스는 2011년 경남 창원을 연고지로 출발했다. 퓨처스리그를 거쳐 2013년 KBO 정규 리그에 합류했다. 첫 시즌을 7위로 마칠 때만 해도 ‘막내 구단’의 정착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대세였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공룡군단은 2014년 신생 구단 사상 역대 최단 기간 포스트시즌 진출이란 기록을 세웠다. 가을 야구를 경험한 공룡군단은 3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고, 2016년 역대 최고 성적인 정규 시즌 2위에 오르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NC 다이노스의 슬로건은 ‘1등’이나 ‘이기자’가 아니라 ‘정의ㆍ명예ㆍ존중’이다.
승리가 지상 과제인 프로 스포츠 구단의 슬로건으로는 낯설다. NC 다이노스의 사장이나 단장은 선수 이름을 막 부르지 않고 “OOO 선수”라고 높여 부른다. 보통 구단들이 원정 경기시 외국인 선수나 팀 내 고참 선수에게만 배정하는 ‘1인 1실’을 모든 선수가 똑같이 쓰게 했다. 프로 선수로서 실패하거나 팀에서 방출됐던 선수들이 NC 다이노스에서 다시 야구인생을 이어간 경우도 많다.

다양한 선수들이 스스로 명예를 지키며, 코칭스태프가 이들을 하나로 이끌고, 선수를
지원하고 존중하는 구단이란 3박자가 야구벤처 NC 다이노스의 성공을 만들어 냈다.

NC다이노스 선수들의 약속 ‘다이노스 코드’


  • 유니폼과 장비에 불필요한 부착물 달지 않기


  • 글러브·배트 던지기 같은 과도한 감정 표현 자제


  • 팬들 요청에 최소 10명 이상에게 사인, 불가피할 땐 예의를 갖춰 거절

VIDEO

내 집 같은
NC 다이노스


A. 솔직히 야구선수의 꿈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달리기가 빨라서 시작하게 되었고, 재미있게 야구를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A.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을 때 가장 기뻤고, 2013년도 첫 정규시즌을 앞두고 부상으로 개막을 함께하지 못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A. 김경문 감독님의 리더십과 전 선수들의 단결된 힘이다.


A. 취미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하고, 간단한 게임은 조금씩 하는 편이다.


A. 팀이 15연승 할 당시 만루홈런을 쳤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A. 야구단 창단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알게 됐는데, 첫 인상이 아주 신선하고 좋았다.


A. 인생의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좋은 구단으로 오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A. 야구단을 창단할 당시 느꼈던 젊고, 신선하고, 혁명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interview

야구 데이터 ‘덕후’가 말한다

공룡들의 데이터 야구

NC 다이노스의 거침없는 야구를 두고 전문가들은 모회사의 지원과 기업문화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NC 다이노스는 창단 때부터 정규리그 선수 전원에게 아이패드를 지급하고 데이터 야구를 구현했다. 선수들의 아이패드에는 NCSOFT가 자체 개발한 ‘D-라커’라는 전력 분석 프로그램이 깔려 있다. D-라커에서 선수들은 상대팀 선수의 장점과 단점을 물론 최근 경기성적 등 모든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영입한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도 KBO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이 같은 성과엔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데이터야구를 실전에 적용한 ‘NC 다이노스 데이터팀’의 역할이 크다. 이들은 미국 마이너리그의 트리플A 경험 선수 3000여 명의 데이터를 100가지 항목으로 뜯어보고 영입 대상을 선정한다. 데이터팀을 이끄는 임선남 야구 데이터분석가를 만났다. 그는 야구경기에서 나오는 각종 데이터를 샅샅이 뜯어보던 야구 데이터 ‘덕후’(오타쿠(オタク)의 파생어) 출신이다.


A. 대학에서 미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졸업후 제조업 분야 대기업에 6년쯤 다니면서 신규사업 기획, 전략기획, 재무예측 같은 일을 했다. NCSOFT가 야구단을 창단한 2011년 NCSOFT 데이터정보센터(DIC) 산하 ‘야구 데이터팀’으로 이직했다. 잘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대기업의 전략기획 업무보다 국내에선 아무도 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새로운 기회도 많을 것 같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 어렸을 때 한국프로야구가 시작됐는데, 그 때 MBC청룡을 좋아했다. 이후 한동안 야구에서 멀어졌다가 박찬호 선수가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1997년)한 무렵 메이저리그 경기를 챙겨보기 시작하면서 야구에 다시 빠졌다.


A. 인터넷중계로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는 것만으론 만족이 안 됐다. 정보를 더 얻으려고 미국의 야구 관련 사이트를 찾아 다녔다. 그때 미국 야구팬들이 “이 선수는 3승의 가치가 있는 플레이어(three win player)”라고 얘기하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대체선수 대비 팀에 3승 더 기여하는 선수’라는 뜻이더라. 그때부터 메이저리그에선 선수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 지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됐다.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더 북(The book)> 같은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야구 통계 분석 방법론) 관련 책을 거의 다 주문해서 읽었다. 어떻게 야구 기록을 계산하고, 가치를 평가하는지 공부했다. 재미 있어서 푹 빠졌고 그 세계에 설득 당했다.


A. 야구는 특정 선수 개인이 아니라, 팀이 함께 결과를 만든다는 점이다. 선수 수도 많거니와, 선수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돼 있다. 활동 범위에 제한이 없는 농구나 축구는 스타 선수 한 명이 경기장 전역을 휘저을 수 있지만 야구는 자기 포지션에서 해야 한다. 비싼 돈을 주고 뛰어난 수비수를 데려와도, 그 선수에게 공이 날아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야구에선 모든 선수가 다 고르게 기여해주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또 나처럼 데이터를 분석하는 입장에선 야구만큼 데이터가 잘 쌓여있는 스포츠가 없으니, 야구의 기록도 매력적이다.


A. 수학을 그저 수학으로만 볼 때는 숫자를 안 좋아했다.. 그런데 야구 데이터를 보면서 수학이 필요해지니 수학을 재밌게 보게 됐다. 재밌으면 하게 된다. 원래 처음엔 공과대학에 입학했다가 미학이 더 재미 있어 보여서 대학을 다시 갔고, 경제학도 재밌어 보여서 공부했다. 세상에 재미있는 게 참 많다. 이런 경험이 처음 데이터팀 만들어서 일할 때 도움이 됐다. 처음엔 ‘맨땅에 헤딩하는 일’이었으니까.


A. 데이터가 잘 정리돼 있지 않고 측정 데이터도 제한적이었다. 누군가가 쌓아놓은 것이 없는 영역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래서 없으면 없는 대로 (데이터를) 직접 찾아 쓰고, 만들어 썼다. 메이저리그만큼 데이터가 정교하지 않다면 그만큼 오차가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


A. 쓸 만한 데이터는 다 수집한다. 성격이나 인성을 보기 위해 어떤 것을 지표로 해야할 지 항목을 정의하고, 정량화하려고도 시도한다.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때는 수치로 바로 드러나진 않아도, 선수가 야구장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지를 면밀히 관찰한다. 투수가 3루수 실책에 대해 화를 낸다거나 하면 바로 후보군에서 제외한다.


A. 우리 팀에 스카우트가 있다. 원래는 다른 부서에서 일하다가 2년 전부터 아예 같은 팀에서 일하고 있다. 이외에도 우리 팀엔 나처럼 일반 기업 다니다가 이직한 데이터분석가와 외국인 선수 적응을 위한 코디네이터가 더 있다. 모두 야구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야구가 좋아서 이 일을 한다.


A. 처음엔 이런 방식이 믿을만 한 지에 대한 트랙레코드(적용 사례)가 없으니 신뢰가 쉽게 쌓이지는 않는다. 솔직히 처음엔 나도 이 방법이 한국 야구에서도 통할 지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 팀은 외국인 스카우트 외에도 선수들의 보상·연봉과 관련된 평가, 새로운 훈련법 테스트 등을 하는데, 좋은 사례가 필요했다. 다행히 데이터를 근거로 처음 영입했던 찰리 쉬렉에 이어 외국인 선수들이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주면서 신뢰가 쌓여갔다. 우리 구단에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뛰었던 타자 에릭 테임즈도 기대 이상으로 정말 잘해줬다. 물론 아담 윌크(2013년 시즌 중 퇴출)처럼 실패한 사례도 있다. 실패를 통해서 숫자 이외에 인성, 태도 등을 다양하게 살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어쨌든 데이터팀이 빨리 자리잡을 수 있었던 데는 NCSOFT의 기업문화 영향이 컸다.


A. 게임 회사로서 빅데이터를 다루면서 데이터를 통한 의사결정이 기업문화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데이터 분석에 근거한 야구에 대한 신뢰가 구단주부터 야구단 전반에 있었다. 그래서 데이터팀이 다른 외부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다. 또 내가 처음 NCSOFT 데이터정보센터 산하에서 일하면서 국내 최고의 데이터 전문가들에게 . 통계적가인 개념이나 분석 방법 등에 대해 많이 배웠던 것도 도움이 된다. 지금도 DB를 만들 때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그들에게 물어보고 조언 받곤 한다.


A. 우리가 단순히 야구 데이터를 분석한다기보다, 궁극적으론 우리 구단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야구를 정당한 방법으로 더 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데이터팀이 기여하는 것이다. 꾸준히 데이터에 근거한 결정을 하면서 그 결과에 따라 우리의 데이터 분석 방법을 수정하고 더진화시키는 과정의 연속이다. 우리 야구의 근거가 된 데이터 속에서 우리 야구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기 위해 데이터 아카이빙을 열심히 한다. NC 다이노스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스카우트 등이 쓰는 데이터가 무지 많다.


A. 예전보다 데이터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 5년 전만 해도 풀타임 전업으로 야구 데이터만 보는 사람은 국내에서 내가 유일했는데, 지금은 다른 구단에도 데이터분석을 주업으로 하는 자리들이 생겼다.


A. ‘아, 이젠 진짜 야구 그만보고 싶다’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있다. 미국 마이너리그 트리플A 경기부터 메이저리그, 한국 야구까지 하루 종일, 일년 내내 야구를 본다. 매일 경기 결과가 나오는 야구는 성과를 매일 평가 받는 스포츠다. 내가 영입한 선수가 그날 못 하면 나도 성과가 나쁜 날이 된다. 하지만 취미를 뺏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일은 원래 즐거울 때도 힘들 때도 있는 거니까.


A.제조업 기반의 기업에 다니다가 게임회사로 이직했더니 출근 첫 날부터 문화적 충격이 컸다. 나는 첫 출근날이라고 나름 신경 써서 정장 양복을 잘 차려 입고 왔는데, 여기 판교에선 아무도 그렇게 안 입고 있어서 충격 받았다. 기업 문화가 많이 다르다. NCSOFT를 생각하면 저는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게임과 야구가 연결되는 접점이 즐거움이다. 왜 게임 회사가 야구단을 운영하느냐고 이상하게 볼 수도 있지만, 게임과 야구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라는 점에서 통한다. 우리 게임과 우리 야구를 보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보는 게 나한텐 즐거움이다. 또 이직 후 아이 둘을 NCSOFT 직장어린이집 ‘웃는땅콩’에 보냈다. 지금도 둘째 아이를 매일 데리고 출근하고 있어서 ‘NCSOFT와 함께 애들을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성범 홈런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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