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서울 강남에서 열린 NCSOFT 기자간담회. NCSOFT의 모바일 전략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 끝에, 김택진 대표가 말했다. “저희는 한눈을 판 적이 없습니다. 개발 하나로 ‘폼생폼사’하는 회사였고, 지금도 수많은 도전을 하고 있죠. 저희가 제일 잘하는 건 과감한 도전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는 몇 년 전부터 AI에 집중했습니다. AI 기반으로 어떤 게임이 가능할 지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발표에 장내가 술렁였다. ‘NCSOFT AI랩’의 존재가 처음 공식화 된 순간이었다. 2011년 소규모 랩(Lab)으로 출발한 NCSOFT의 AI 연구조직은 현재 연구원 50여 명 규모의 AI센터로 커졌다. 초창기부터 센터를 이끌어 온 이재준 박사를 innovationLab이 만났다. 카이스트(KAIST)에서 인공지능을 공부한 그는 이미지인식 기업 인지소프트를 창업했고, 이후 SK텔레콤을 거쳐 2011년 NCSOFT에 합류했다.
A. 2000년대 SK텔레콤의 지능형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개발할 때 상사였던 윤송이 NCSOFT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AI 연구를 해보자, AI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A. 나는 AI를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도구(AI)로 어떤 문제를 풀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AI를 만들까’ 이 두 가지를 해결하는 게 먼저다. 그때부터 국내 최고의 AI 연구자들을 찾아서 우리 랩에 합류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학교(카이스트) 다니던 20여 년 전보다 국내 AI 연구자 풀이 확 줄어서 사람 찾기가 쉽지 않았다.
A. AI로 게임회사에서 뭘 할 수 있을지를 찾는 게 내 첫 번째 일이었다. ‘게임 AI’라고 하면 다들 NPC(Non Player Character·게임 내에서 사람이 조작하지 않는 캐릭터)만 떠올린다. 내부 직원들도 그런 반응이었다. 그만큼 우리가 상대적으로 일찍 연구를 시작했다. 지난해 구글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바둑에서 이기기 전까지만 해도 ‘NCSOFT가, 게임회사가 왜 AI를 하겠다고 하느냐’며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AI 연구자 채용 면접 때도 우리가 면접자에게 그런 점을 설득해야 했을 정도였다.
A. 연구환경이다. NCSOFT는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많고 개발자를 우대하는 회사다. 보통 기업 R&D에서 힘든 게 윗사람 설득하는 일이다. 특히 국내외 기업들이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분야에서 R&D를 하려면 윗사람을 설득하기가 더 어렵다. 그런데 우린 대표가 기술의 미래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린 연구만 잘하면 된다. 이런 환경에서 내 역할은 대학원 같은 연구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대학원은 한 명의 천재가 이끌지 않는다. 다같이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탐구해야 연구가 잘 된다. 수평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린 AI를 적용하기에 가장 좋은 도메인(영역)인 게임을 만드는 회사 아닌가.
A. 게임이라는 세상을 분석하고 우리의 AI 연구결과를 적용했을 때 그 개선 효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게임에는 엄청난 데이터가 있다. 그걸 분석해서 게임을 더 재밌게, 더 잘 되게 고치는 알고리즘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A. 여러 시도를 했다. 대표적인 건 게임 <블레이드&소울>의 ‘무한의 탑’ AI다. 2012년 출시된 <블레이드&소울>이 2016년 1월 새로 공개한 콘텐츠인 ‘무한의 탑’에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기반의 AI가 적용됐다.
100층짜리 전투장에서 사람처럼 게임을 하는 AI들이 층마다 배치돼 있는데, 각 게임 유저의 실력에 맞게 AI가 자신의 실력을 조절해 1:1로 싸우도록 만들었다. 최소 수십만 번 이상 플레이를 반복적으로 훈련 받은 AI들은 상황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일정한 공격 패턴이 없다. 그야말로 상대에 맞게 싸워주는 AI였다. 곧 출시할 게임
A. 이런 게임 AI들의 목표는 게임 유저를 이기는 게 아니다. AI가 유저들과 재밌게 잘 놀아 주고 또 잘 져 주는 일을 하는 AI가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이기거나 지는 게임은 재미가 없다. 비유를 하자면 ‘접대골프’를 할 수 있는 AI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다.
A. 그렇다. 게임은 사람들이 즐기려고, 이겨보려고 하는 엔터테인먼트다. 알파고처럼 압도적으로 너무 잘 두는 상대와의 게임은 재미가 없다. 아슬아슬하게 져주는, 티 안 나게 져주는 AI가 즐거운 게임 상대다. 흔히 말하는 ‘접대골프’도 골프를 굉장히 잘 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실력이 뛰어나면서 판세를 읽고 상대방의 장단점을 파악해서 상대방이 가장 쾌감을 느낄 만한 지점에서 져줘야 한다(웃음). 일부러 져주는 것처럼 보이면 상대가 오히려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는 게임 AI를 만들려고 한다. 구글 알파고도 아직은 상대를 이기려고만 하지, 어디서 힘을 빼야 하는지에 대한 컨트롤은 잘 안 된다.
A. 우리가 잘하고 잘 아는 분야가 게임이기에, 게임을 주목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게임만 보고 있지는 않다. 게임 이외 분야도 보고 있다. 우리는 ‘AI’라는 기술을 바라보고 가는 것이다. AI라는 기술을 통해 세상의 혁신을 이끌고 싶다. 게임AI도 연구하지만, 자연어처리기술, 스피치, 지식처리, 비전 등 다양한 AI 분야를 들여다보고 있다. 게임 이외에도 세상이 더 편리해질 수 있는 뭔가를 해보려고 한다. 그런 게 눈에 보이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A. 우리의 AI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한 AI다. NCSOFT가 드론이나 웹툰 기업에 투자하는 것도 즐거움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듯, 우리가 게임이 아닌 분야에서 하는 AI도 즐거움에 포커싱을 두고 있다. AR(증강현실)·VR(가상현실)도 많이 고민하고 있다. 게임 기술이 꾸준히 발전해 왔다는 건 끊임없이 즐거움을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즐거움은 원초적인 본능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시도하는 사람들이다.
A. AI는 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기술이다. 나는 그게 재밌다. 살다 보면 ‘아 이런 걸 누가 해주면 좋겠다’하는 니즈(needs)를 느낄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하고, 문제를 해결해보고, 효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즐겁다.
A. NCSOFT는 나한테 테마파크다. 나는 테마파크 직원인 동시에 고객이다. 처음엔 회사에서 대낮에 게임을 한다는 게 문화적 충격이었다. 일반 직장생활 했던 사람으로선 낯설 수밖에. 그런데 그렇게 게임하면서 게임을 이해하고, 개발한 게임AI에 대해 고객들의 피드백을 느끼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또 NCSOFT 와서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A. 오래 전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가졌던 인공지능에 대한 상상을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꿈을 좇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꿈이 실현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인공지능이 아닌데, AI센터 사람들은 계속 아직 잡히지 않은 꿈을 찾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의 한 분야인)자연어처리나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도 예전엔 그냥 AI라고 불렸지만 이제는 AI가 아니라, 자기 이름을 가진 별개의 기술이 됐다. 우리는 아직도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AI라는 꿈을 좇는 사람들이다.